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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州人의 渡航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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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ernative Title
濟州人の渡航に関する研究
Abstract
삼재(三災)의 섬으로 알려진 제주에서는 일찍부터 생존을 위한 도항이 시작되었다. 제주사람들은 어떻게든 궁여지책으로 삶을 위해 교역을 해야만 했고 노동력을 교환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일본이 제주에 가깝다는 것은 지리적인 측면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은 한반도 본토보다 선진적인 산업이 활발하게 가동되고 있었으므로 제주사랍들에게는 현금획득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노동시장이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제주사람들이 일본으로 도항하여 그 곳에 정착하기도 하고 귀향하기도 했다.
본 논문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제주사람들의 일본도항을 물밑에서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시작했다. 비록 실험적인 연구적 성격을 내포하고는 있지만 도항했다가 귀향한 조사대상자를 통해서 그들이 어떤 이유 때문에, 어떤 경로를 통해서 도항을 했는지, 그들의 일본에서의 생활과 귀국한 후 제주에서의 생활상의 변화는 어떠했는지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나는 일본으로 도항했다 귀향한 제주사람들을 직접 만나 면담조사를 실시하였다. 도항했다 귀향한 2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하였으나 결과적으로 16명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도항경험이 있는 8명을 '합법적 도항자(A그룹)'로, 해방 후에서 90년대에 걸쳐 도항경험이 있는 8명을 '비합법적 도항자(B그룹)'로 분류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제주사람들의 도항이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1차 세계대전의 세계정세에 의해 호황을 누리고 있던 일본이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취한 정책적 노동력 유인(誘引)이 있었다. 경제적인 궁핍으로 도항한 제주사람들에게 현금 소득의 효과는 더 많은 노동력을 재유인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면담을 통해서 A그룹의 도항자들은 이미 부모나 형제자매가 일본에 체재하고 있었으며 일본에서 직업을 갖고 있거나 유학중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A그룹은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도항했다기보다는 부모나 형제자매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이에 비해 B그룹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목적을 가지고 도항을 했다. 그들은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으로 밀항하여 불법체류자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불심검문이나 밀고 등에 의해 체포돼 송환되지 않을 때까지 장기체류할 것을 목적으로 도항했다.
도항지로는 16명 중에서 12명이 오사카(大阪)이다. 이는 해방 전부터 상당수의 제주사람들이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그 연고로 인해 많은 제주사람들이 오사카로 도항했기 때문이다. 즉 제주와 오사카 간에는 이미 해방 전부터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이를 통해서 원활한 커뮤니티가 이루어져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A그룹이 부모형제를 매개로 하여 도항한 반면 B그룹은 브로커를 통해서 도항하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친인척과 연결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주로 밀항이라는 루트를 통해 도항한 B그룹이 일단 도항에 성공하게 되면 일본에 있는 친인척의 도움으로 숙소와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B그룹의 도항자들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부당한 근무조건 하에서 일을 했다. 같은 시간동안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일본사람이나 재일교포에 비해 저렴한 임금을 받았다. 아무리 억울해도 밀항자 신분으로는 드러내놓고 근로시간이나 실질임금의 부당성에 대해 항변을 할 수 없었고, 말없이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A그룹은 학업과 선진문물 견학이라는 효과를 얻은 반면, 일본사람들의 '조선인 무시'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다. '비합법적 도항자'인 B그룹은 자녀교육비 마련, 주택마련 등 어느 정도 경제적 효과를 거둔 반면, 일본에서의 언어소통문제와 밀고문제로 시달림을 받았다. 언어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문제이지만 밀고는 도항해서 귀향할 때까지 늘 불안한 요소로서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라다녔다.
면담대상자 대부분은 재일제주인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귀향해서 A그룹은 농업, 상업에 종사하거나 정치인, 교사가 되어 제주사회에 공헌하며 살아왔다. B그룹 역시 농업, 상업, 관광업에 종사하거나 학업을 계속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현재 사회봉사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제주사회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노고는 오늘날 풍요로운 제주사회의 밑거름이 되었다. 도항은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또한 제주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재일제주인의 제주에 대한 물적 기증과 일본에서의 도항자에 대한 협력은 제주와 재일제주인과의 연대 그리고 제주사람들과 재일제주인과의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용해 왔다
도항은 오늘날 형태만 다를 뿐 여전히 선진문물을 동경하거나 환율이 높은 자본주의 시장으로 진출하는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까지도 제주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보다 나은 일본으로 끊임없이 도항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원인이 작용하는 것이다.
三災の島として知られる濟州では、早くから生存のための渡航が始まった。濟州の人々は窮余の一策として交易を必要とし、勞動力の交換が唯一の代案であった。日本は地理的に済州に近いというだけでなく、より重要なことは、日本には朝鮮半島より先進的な産業が活発に稼働しており、済州の人々にとって、現金を得ることのできる魅力的な労働市場であった。このため、済州の人々の多くが日本に渡航、定着し、あるいは帰郷したのである。
本稿は、既に長い歴史を持つ済州の人々の日本渡航に焦点を当て、これを水面下から引き上げることに意義を置いている。研究の方法としては試験的な要素を基本とし、日本に渡航し、帰郷した調査対象者を通して、彼らがどのような理由で、どのような経路で渡航したのか、また、日本での生活と、帰国後の済州での生活にどのような変化があったかについて考察した。
日本に渡航し、帰郷した対象者20人に直接会い、インタビューを実施、その中から最終的に16人を研究対象とした。16人のうち日帝時代に渡航した経験のある8人を「合法的渡航者(Aグループ)」とし、1945年の解放から90年代にかけて渡航した8人を「非合法的渡航者(Bグループ)」として分類した。
済州の人々の渡航が日帝時代に多い理由はいくつかの観点から考えられるが、第1次世界大戦の特需で好況が続いた当時の日本が、労働力を確保するために労働力誘引策を取ったことが挙げられる。経済的な貧窮から逃れようと渡航した済州の人々にもたらした現金所得の効果は、さらに多くの労働力を再誘引する根拠になった。
インタビューを通して、Aグループの渡航者は両親や兄弟が既に日本で生活しており、職業を持っている場合や留学中であったことが分かった。Aグループははっきりとした目的を持たず、両親や兄弟の勧めで渡航していた。これに対してBグループは「金を稼ぐ」という目的を持って渡航している。彼らの多くは経済的な困難から密航した不法滞留者であったため、職務質問や密告で逮捕され送還されるまで長期間滞留することを目的に渡航した。
渡航地としては、16人のうち12人が大阪であった。その理由は、1945年の解放以前から相当な数の済州の人々が大阪で生活しており、その縁故で多くの人が大阪に渡航したためである。言い換えれば、済州と大阪の間には解放前から既にソーシャルネットワーク(Social Network)が形成されており、これを通して円滑なコミュニケーションが取られていたことが分かる。
Aグループは家族をつてに渡航しているが、Bグループはブローカーの仲介で渡航し、渡航後、日本に住む親戚と連絡を取っていた。主に密航というルートで渡航したBグループは、密航に成功すると日本に住む親戚の助けを借りて寝泊まりする場所を見つけ、職に就くことになるが、彼らは劣悪な労働環境と不当な勤務条件にさらされていた。同じ時間、同じ仕事をしても日本人や在日韓国人より安い賃金が支払われた。しかし、密航者という立場では、不当な勤労時間や賃金を訴えることもできず、黙々と働くより他に方法はなかった。
Aグループは学業及び先進文明の修得という効果を得たが、一方で日本人の「朝鮮人軽視」に対する深い記憶を残していた。「非合法的渡航者」であるBグループは、子供の教育費や住宅購入費など、ある程度の経済的効果を得るに至ったが、日本での言葉の問題や密告に苛まされた。言葉の問題は時間が経つにつれ少しずつ解決されるが、密告は渡航から帰郷まで常につきまとう影のような不安要素であった。
調査した対象者のほとんどが、在日済州人の助けと自らの努力で当初の目的を達成した。帰郷後、Aグループは、農業および商業に従事、あるいは政治家や敎師になり濟州社会に貢献して来た。Bグループもやはり農業、商業、観光業に従事、または学業を続け、現在はボランティア活動をしながら生活をしている。濟州の社会において相当な比重を占める彼らの目に見えない苦労は、今日の豊かな済州を築く糧となった。渡航は個人の問題であると同時に、済州社会の問題でもあるのだ。
在日済州人がこれまで故郷に多くの物質を寄贈し、また日本で渡航者に援助、協力した事実は、済州と在日済州人の連帯、そして済州の人々と在日済州人とのパートナー関係を維持する重要な機制の役割を果たして来た。
形態こそ異なるものの、先進文化に憧れ、または高い外貨を求めて資本主義市場に進出するという渡航の本質は今日も変わりはない。済州の人々が、今も経済的に豊かな日本へ渡航し続けるのも、このような理由からではないだろうか。
Author(s)
전은자
Issued Date
2008
Awarded Date
2008. 2
Type
Dissertation
URI
http://dcoll.jejunu.ac.kr/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4294
Alternative Author(s)
田殷子
Affiliation
제주대학교 통역대학원
Department
통역대학원 한일과
Advisor
李禮安
Table Of Contents
머리말 = 1
Ⅰ. 조사과정 = 3
1. 조사방법 = 3
2. 면담대상자의 특성 = 6
Ⅱ. 도항의 정의와 분류 = 10
1. 도항의 정의 = 10
2. 도항의 분류 = 12
Ⅲ. 도항의 동기와 경로 = 15
1. 도항의 동기 = 15
2. 도항의 경로 = 18
Ⅳ. 일본생활 = 25
Ⅴ. 귀국과 정착 = 36
맺는 말 = 42
참고문헌 = 45
日本語抄錄 = 47
Degree
Master
Publisher
제주대학교 통역대학원
Citation
전은자. (2008). 濟州人의 渡航 硏究
Appears in Collections:
Graduate School of Interpretation & Translation > Korean-Japa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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